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로서,
진화론에 기여가 가장 큰 인물입니다.
찰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영국 슈루즈버리에서
부유한 의사 로버트 워링 다윈과 수잔 사이에서 2남 44녀 중 다섯째 아이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이름 난 의사였으며,
외할아버지는 영국 도자기 산업의 창시자이자 도예가인 조시아 웨지우드였습니다..
찰스 다윈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가 쓴 책들을 읽으면서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1817년~1825년까지 다윈은 초중등 교육을 받으면서
슈루즈버리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에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윈은 형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함께 학교 정원에 화학 실험실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1825년 에든버러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배웠으나 성격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1828년 케임 브리지대학으로 진학하여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식물학자 헨슬로와
지질학자 아담 세지웍 교수의 지도를 받았으며 1831년에 졸업했습니다.
찰스 다윈은 케임 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해인
1831년 12월 27일 식물학자 교수였던 헨슬로의 추천으로
지질학 탐사와 과학 표본 수집을 원하는
로버트 피츠로이 함장의 영국 해군의 탐험선을 타고
약 5년 동안 탐사 하면서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여러 섬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를 두루 항해.
탐사하고 1836년 귀국 후 세계 일주 탐험에서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1837년 이른바 “적색 메모장”에 최초로 종의 변화에 관한 착상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1839년에 ‘비글 호 항해기’와
1842년 생물계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 ‘산호초의 분포와 구조’를 발표 했으며,
1844년 ‘화산도의 지질학적 관찰’을 출판했고,
1846년 ‘남미의 지질학적 관찰’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활발한 학문 활동은 다윈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닌
독일어 등 5개 언어에 능통한 부인 엠머의 번역 봉사를 받아서 이룬 것이기도 합니다.
1856년 진화론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완성되기 전에 엘프리드 윌리스로부터
자기의 학설과 똑같은 취지의 논문이 온 것을 보고 놀랐으나,
친구인 후커와 라이엘의 배려로
1858년에 린네 학회 총회에서 윌리스의 논문과 함께 발표하였고,
1859년 “종(種)의 기원(起原)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
이라는 진화론을 공표하여 생물 진화의 사실을 제시하고
‘자연선택’을 수립했습니다.
이에 종교단체의 많은 뭇매를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론의 정설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862년~1881년 사이에 다양한 저서를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들로 ‘가축과 재배 식물의 변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식물의 운동력’ 등을 집필했습니다..
이후 1882년 4월 19일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잉글랜드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물리학에서의 뉴턴 역학과 더불어
사상의 혁신을 가져와 그 후의 자연관 ·세계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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